마리 앙투와네트의 락앤롤 마인드

2007. 5. 31. 14:30핫이슈

반응형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왕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던 개념 없는 여자로 기억되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그녀는 역사에 휩쓸린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식의 역사적 재평가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시대물을 이 영화에서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는 혁명에 관심 없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 또는 소녀들, 혹은 그 경계에 있는 누군가도 사회와 정치와 혁명에는 관심이 없다. 소피아 코폴라는 언제나 개인의 고독에 주목한다. 전작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낯설고 거대한 장소에서의 단절감과 고독은 <마리 앙투아네트> 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가 스타일리시한 이유는 그녀가 시각과 청각 모두를 자극함으로써 고독과 성장이라는 화 두에 대하여 보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매우 지루하게 봤음에 도 불구하고 성숙한 몸매의 어린 신부 샬롯이 티셔츠에 핑크색 팬티만 입은 채 혼자서 창가와 침대에 멍하니 걸쳐져 있던 그 장면과 흘러나오던 몽롱한 음악, 그리고 그 순간 목이 뜨거워지며 울컥하던 느낌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매우 프라이빗한 주제의식과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흔해빠진 시대극에 도전하는 락 앤롤 마인드의 영화로 만드는 이유다. 그리고 이 영화로 오스카 3관왕을 이뤄 낸 전설의 의상감독 밀레나 카노 네로는 이 18세기 궁정 드라마를 모던한 청춘 영화로 만들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는 시작부터 대담하다. 감독과 주연이 소개되는 타이포는 강렬한 핫 핑크고 이와 함께 시작된 록 음악은 영화 내내 귀를 때린다. 핑크컬러는 당시 의복에서 사용되지 않았었지만 천진한 10대 소녀들에게 핑크만큼 적절한 색 은 없다.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다크한 색감의 레드나 블루 컬러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과자 마카롱에서 따 온 핫 핑크와 골드 옐로우, 피스타치오 그린 등의 컬러는 로코코 스타일이라 이름지어진 당시의 사치스런 보석과 장신구 없이도 화면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또한 작고 사랑스러운 리본과 프릴을 사용하고 주얼리는 간소화해 모던함을 강조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상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생뚱맞게도 컨버스 운동화다. 스치는 화면 구석에서 한 순간 등장하는 하늘색 컨버스 운동화는 이 영화에서 소피아 코폴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극명 하게 드러낸다.

소녀는 낯선 곳에 떨어졌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성장하고 있으며 그 허전한 마음의 반대급부로 패션에 열광한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이면서 영화계의 대부인 아버지 프란시스 코폴라의 배경을 등에 업고 자란 소피아 코폴라 자신의 이야기고, 헐리우드의 화려한 아역스타로써 성장해 온 커스틴 던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또 현대사회의 황량함 속에서 커 나가고 있는 소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무심하게 놓여진 하늘색 컨버스 운동화는 수 세기를 넘어 프랑스의 어린 왕비와 21세기의 전 세계 소녀들을 연 결해 주고 있느며, 이것이 의상감독 밀레나 카노네로가 이 영화의 의상을 클래식이 아닌 락앤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칸느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프랑스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고 외국 언론들로부터 영화를 볼 돈으로 차라리 케이크를 사 먹으라는 혹평을 면치 못했으며 우리나라의 모 기자는 록 음악을 틀 거면 차라리 에이브릴 라빈을 틀지 그랬냐고 비꼬았다. 자고로 논란이 이는 영화는 스스로 보고 판단해야 하는 법.

소피아 코폴라의 락앤롤 마인드에 공감 백만 개를 날릴 것인지 비주얼만 삐까리뻔쩍한 2시간 짜리 뮤직비디오라고 돌을 던 질 것인지는 당신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적어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자신이 패션계의 셀러브리티인 소피아 코폴라와 헐리웃 최고의 패션 아이콘 커스틴 던스트의 만남(게다 이 둘은 친구라지), 최초로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베르사유 궁전과 18세기의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 등 이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를 무시하기는 힘들 듯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