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노랑 땡땡이 비키니

2007. 6. 13. 15:18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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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에선 여성들이 이렇게 현대적인 비키니 형태의 옷을 입고 운동을 했다는데.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역사책에 자주 보이는 원시인들도 -그림 상으로는 진짜- 애니멀 프린트 비키니를 입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는 친숙한 랩 스커트를 두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그림은 로마의 한 빌라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벽화로 사람들이 이 옷을 입고 수영을 했었는지는 미지수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수영을 즐기던 문화도 사라졌다 할만큼 로마 사람들과 수영은 밀접했다.
그 이후 유럽에는 먹고 살기 너무 힘들어 수영할 생각은 꿈도 못 꾸는 암흑기가 도래했고 그 이후 점점 남성중 심의 사회가 발전하다 보니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옷 벗는 건 죄악이 됐다고. 그러다 1800년 대 후반에 날씨가 너무 더웠는지 여성들이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하다가 평상복 그대로 입고 바다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점차 간편한 수영을 하기 좋은 복장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복장을 잠시 그려보자. 치렁치렁 레이스와 긴 치마자락이 물에 젖어 여성의 몸을 감싼다고 생각해보라. 은근히 섹시하지 않겠나. 그 후 1920년대 샤넬이 몸매 라인을 드러내는 저지로 된 수영복을 디자인했고 아래 사진과 같은 수영복의 형태를 거치면서 점점 살색을 많이 드러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본격적인 비키니의 시작인 1946년으로 건너 가보면 그 당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마셜 군도의 비키니 산호초 섬에 살던 사람들을 싼 비용으로 이주시키고 수소 폭탄 - 히로시마의 원자폭탄보다 위력이 센 - 투하 시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 이주비용을 아직까지도 지급하지않고 있다고.
그런데 이 비키니 섬과 수영복 비키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 폭탄 실험의 충격이 너무 커서 당시 신문에서는 그 이슈만 다루고 있었는데 파리에서 루이 레아르라는 할아 버지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고 새로운 수영복을 발표했던 것. 그러면서 이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결과적으로 이 수영복도 폭발적인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 50년대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를 참고하면 2,30년 대의 수영복과 비슷해 보이는 귀여운 원피스 형과 핀업걸의 비키니 스타일로 일축 된다.
그러다 히피의 시대가 도래했다. 베트남 전쟁과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낀 히피들이 집회에 모일 때 노자의 도덕 경을 들고 있었다고.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억지로 가공하지 않고 ‘자연’의 성질이나 모습을 지키는 것 또는 방법이 ‘무위자연의 도’ 아니던가.

그 성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서 지금도 시위 집회에서 때때로 옷을 벗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60년대의 풍경 은 그러했고 이에 따라 젊은이들의 반항이랑 키워드가 급부상했다. 남성은 머리를 기르고 여성은 미니 스커트 를 입으며 기성세대에 반항했다.



노출이란 것은 이상하게도 한번 시작되면 그 끝을 보일 때까지 진행되는 성향이 있는 듯 하다. 60년대의 이 노출적 성향은 모노 키니(mono-kini:남성용의 극히 짧은 팬츠)와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크로셰로 짠 초 비키니도 등장시켰다. 결국은 프랑스의 해변에는 탑리스 차림의 여성들이 돌아다니게 된 것.

노출적 성향으로 1970년대에는 스트링(string)이라는 수영복도 등장했다. 스트링은 중요 부위만 가리는 조그만
천을 끈으로 연결한 초 비키니로 브리프(brief:짧은 팬츠)는 엉덩이 양 끝에서 끈으로 맨 것이다.
점점 남성들의 눈만 배불러지는 것 같지 않은지? 사실 이런 노출적 성향을 젊은 여성의 당당한 노출과 타인의 시선에 결부시키자면 자신감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상대의 눈길이 너무 질척하지만 않으면 비키니를 찬양하고 싶다. 자, 이제 비키니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으니 새로운 수영복 트렌드에 귀를 솔깃할 때다.
(사진자료 the bi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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