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 추상미와 결혼하고 썸걸즈 주연배우 발탁됐네 조승우와 함께했던 헤드윅

2007. 6. 14. 10:37연예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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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무대. 배우 이석준(35·사진)도 긴장하고 있었다. 본무대 전 기자시사회에서는 너무 긴장해 땅콩 먹는 장면에서 손을 떨기도 했다. 조명이 살짝 어두워졌다 밝아지고 무대 위로 걸어나갔다. 배우와 관객이 얕은 호흡까지 주고받는 소극장 무대. 객석의 반응을 느끼고 나서야 떨리던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8일 첫무대를 가진 연극 ‘썸걸즈(닐 라뷰트 원작·황재헌 연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석준을 만났다.

그가 연기하는 ‘강진우’는 결혼을 앞두고 예전에 사귀었던 네 명의 여자친구를 차례로 호텔방으로 부른다. 갑자기 잠적하는 것으로 그들을 버렸던 그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뻔뻔하게 늘어놓고 ‘이해’를 요구한다. 결혼전 과거의 찜찜한 잘못을 말끔히 정리해야 속이 편하다는 것이 이유다. 한번 상처받았던 여자친구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지만, 강진우는 더 기막힌 속셈을 숨기고 그들을 농락한다.

“정말 제대로 나쁜놈이죠. 원작보다 수정본에서 더 강해져서 당황했어요. 잘어울려요? 정말 그런 경험 없는데… 팬들도 ‘오빠 딱이에요!’ 그래요. 이제 써붙이고 다니려구요. ‘나는 강진우가 아닙니다’라고”

억울한 표정이지만 그는 내심 흐뭇해하고 있다. 또한번 연기를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썸걸즈’는 작년 ‘이아고와 오셀로’에 이어 두번째 만나는 연극이다.

“더 가보고 싶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뮤지컬하면서 제가 그랬어요.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었죠. 작년에 연극할때 그런 과정을 배웠어요. 뮤지컬은 노래도 있고 춤도 있어서 도망갈 데가 있는데 연극은 비상구가 없어요. 일상적인 말투를 써야하고 호흡도 바꿔야 하고…다 만들어놨는데도 계속 다시 하라고 하고 정말 답답했는데, 자꾸 찾으니까 계속 찾을 게 많아지더라구요. 나중에 무대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달랐어요”

그는 이런 방식을 “뮤지컬에도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과 연극이 노래가 있고 없고로만 나누는 것 같은데 ‘접근 방식’이 가장 다른 것 같아요. 전 뮤지컬배우치고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연기를 위해서는 노래를 좀 부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캐릭터를 만들고 나면 그냥 놔버리는 분위기가 있는데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연출과 배우가 서로 교감하면서 마지막까지 인물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요”

95년 연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병사 17’ 역으로 데뷔한 그는 무대밖에서 맘고생도 적잖이 했다. 이상한 소속사를 만나 2년동안 ‘운동만’ 하기도 했고, 소극장 뮤지컬 무대에 섰지만 관객은 머릿수를 셀 수 있을만큼 적었다. 200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때는 ‘베르테르’ 역을 조승우에게 내어주고 ‘알베르트’ 역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자존심 상하고 속상했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어쨌든 ‘알베르트’를 멋지게 소화해내 뮤지컬계에 그의 이름 석자를 똑똑히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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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미 ‘4회분’을 단체관람으로 예약할만큼 열성팬도 많지만 그는 “팬의 반응과 일반관객의 반응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환호해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냉정한 반응에 더 신경을 써야죠. 오래된 팬 중에는 ‘오늘 별로였다’고 지적해주는 친구도 있어요” 헤드윅 출연때는 여자친구 추상미가 “30점”이라고 평 해 일주일 연락끊고 ‘심기일전’했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일주일 맘고생하고 다시 돌아와서 하니까 ‘달라졌다’고 평해주더라고요” 대학시절 “망치를 집어던지며 혹평을 하기로 소문났었다”는 김효경 교수가 최근 “너 이제 무대에서 놀더라”는 평을 해줬을때는 “너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내년 방영 예정인 TV드라마 ‘카인과 아벨’에도 출연하는 그는 “무대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연기에 대한 모든 경험을 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안올거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연기에 제한을 두기 싫어서 해보는 거예요. 전 10년 뒤에 창작뮤지컬로 브로드웨이 진출하는게 꿈이에요. 아마 저는 프로듀서 역할을 하겠죠. 이야기 구상은 다 해놨어요. 10년 뒤에 어떤 친구들이 활약하고 있을까 지금 열심히 찾고 있어요”

〈글 장은교·사진 이상훈기자 indi@kyunghyang.com

▲ 연극 ‘썸걸즈’
 
연애의 끝에는 죄가 있을까. 있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할까. 어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다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얘기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인연이 다했다”며 ‘운명론’을 내밀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남자, 강진우는 이렇게 말한다. “글쎄. 나한테 화난 건 아니지? 너나 나나 서로한테 잘못한 건 없는 거다”

연극 ‘썸걸즈(닐 라뷰트·황재헌 연출)’에서 관객들은 ‘미워할 수 있는 나쁜 남자’를 만난다. 결혼을 앞둔 영화감독 강진우는 과거 자신이 버린 여자친구들을 차례로 만나 잘못을 청소해버리려한다. “그때 미안했어”가 아니라 “마지막이 좀 깔끔한 것 같지 않아서”라며 ‘용서’를 강요한다. 마지막 반전 후, 진우가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조차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연습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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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석준은 ‘적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여자들이 아무리 속을 뒤집어 상처를 꺼내보여도 ‘왜 저래?’하는 무심한 눈빛, 떼쓰듯 애교부리듯 툭툭 던지는 말투 등 변신을 위한 설정이 돋보였다. 정재은, 정수영, 박호영, 우현주 등 다른 캐릭터의 ‘네 여자’를 보여준 네 배우의 열연도 눈부셨다. 나쁜 남자앞에서 그저 불쌍하고 초라하기만 한 여자가 아니라 강진우와 상대적으로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무대 안팎으로 작은 장치들도 재미있었다. 진우가 호텔방에서 틀어놓는 TV 프로그램은 런던 무대에서 공연했던 배우 데이빗 쉼머가 출연한 시트콤 ‘프렌즈’였고, 여자들이 울때마다 진우가 내밀던 티슈 케이스는 바로 그 자신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케이스였다. 마지막 무대인사때 이석준의 거만한 엔딩도 참신했다.

무엇보다 이 극의 가장 큰 매력은 실컷 욕해도 미안함이 남지 않는 남자 캐릭터다. 휴대전화에 이석준의 얼굴을 배경사진으로 깔아두었던 팬들도 야유와 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연극의 제목이 ‘배드 가이(The bad guy)’가 아니라 ‘썸걸즈(Some Girls)’인 이유도 혹시 그래서가 아닐까. 여자들이여, 이 연극은 사랑에 뒤통수를 맞았던 당신을 위한 거라고.

〈장은교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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